뚝방집 월세 살던 칠갑농산 회장 이능구 프로필 & 가족 재산 이야기 (ft. 수상 도서)

칠갑농산 이능구 회장은 1981년 송학식품을 시작으로 40년 이상 대한민국 쌀 가공식품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인으로 유명한데요.

1980년대 후반에 발생한 재고미 1800석을 소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함으로서 석탑산업훈장을 받은 주인공입니다.

1994년에는 국내 최초로 생쌀국수를 개발해서 국수박사로도 이름을 알렸었죠.

칠갑농산에서 생산되는 제품만 해도 냉면, 국수, 떡 등 350여가지에 달합니다.

서울로 상경하게 된 계기가 참 파란만장한데요.

와이프와 결혼하고 낳은 첫아이가 뇌막염에 걸려서 병원비를 벌기 위해서 서울로 상경해서 떡을 받아서 팔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76년 쌀 한 가마니 값인 단돈 8천 원을 들고 서울로 상경한 이후 배달원 일을 하다 쌀떡에 반했고, 그 당시 생소했던 쌀떡의 판매지를 개척해 크게 성공한 사업가입니다.

여담으로 아내가 아직도 ‘밤새 돈 세다 돈 깔고 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하는 이능구 회장 인생 스토리입니다.

뚝방집 월세 살던 칠갑농산 회장 이능구 프로필 & 가족 재산 이야기 (ft. 수상 도서)
뚝방집 월세 살던 칠갑농산 회장 이능구 프로필 & 가족 재산 이야기 (ft. 수상 도서)

칠갑농산 이능구 회장

1943년 10월 1일 충청남도 청양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20대 후반이던 1970년대 초, 가족을 고향에 남겨두고 홀로 서울로 올라상경해 당시에 생소한 쌀떡 시장을 개척한 주인공인데요. 식품 유통업에 발을 들여 당시 생소하던 슈퍼마켓 시스템과 밀가루 중심의 식문화 환경에서 우리 쌀의 소비를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쌀 가공식품을 개발했습니다.

시골 촌놈이 서울로 올라와서 뚝방집 월세 살면서 자전거를 타고 떡국 장사를 했는데요.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떡국 장사를 어느 날 라면집에서 떡을 팔 생각으로 들어갔다가 라면을 주문하면서 떡국 떡을 넣어서 끓여달라고 했고 그게 지금의 떡라면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단골거래처가 하나둘씩 생겨났고 자전거를 몰고 봉원동 산꼭대기부터 영하 20도의 한 겨울에 제2 한강교를 건너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잠시 위기도 있었는데 동업자가 배신하면서 검찰과 세무서에 불려다니며 처벌받는 시련을 겪다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기까지 했습니다. 전신마비로 몇 발짝도 걷기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절치부심한 끝에 다시 재활에 성공해 지금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1981년 본격적으로 쌀 가공식품 산업에 뛰어들었으며, 쌀(당시 통일벼)이 남아돌던 시기에 국민 식량자원의 효율적 소비와 농촌경제 활력을 도모하고자 쌀을 원료로 한 제품 개발에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정부와 협력하며, 통일벼 중심 쌀 생산을 중단하고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일반미 생산을 정부에 적극적으로 건의하는 등 정책적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0년, 1800만 석에 달하던 쌀 재고 해소에 기여한 공로로 석탑산업훈장을 수상했으며, 2001년에는 국민훈장 석류장도 받았습니다. 1994년 국내 최초로 생쌀국수를 개발해 ‘국수박사’로 불렸고 이후 칠갑농산은 현재까지 400여 종의 쌀 가공제품을 생산, 2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연 매출 970억 원을 달성하는 대표적 장수 식품기업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긴 시간 동안 살아남은 이유는 바로 100% 쌀떡만을 팔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류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에 열광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K 쌀이 전세계의 주식이 될 수 있다며 쌀을 지켜야 한다고 하죠. 이런 신념이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던 시골 촌놈이 쌀떡 신화를 쓴 이유입니다.

칠갑농산 회장 이능구 수상 및 주요 이력

  • 1990년 – 석탁산업훈장
  • 2001년 – 국민훈장 석류장
  • 1981년 – 송학식품 창업
  • 1993년 – 칠갑농산 설립
  • 2002년 6월 – 칠갑농산 회장 취임

※ 이능구 도서

나를 위해 쉬운 길을 선택한 적이 없었다. (자서전)

칠갑농산 이능구 회장 재산 & 아내

칠갑농산 이능구 회장 가족
칠갑농산 이능구 회장 가족

1970년대 초 충남 청양에서 만난 농사 도우미로 일하던 부인과 소박한 시골 예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첫 아이를 낳았는데 뇌막염에 걸려서 돈을 벌어서 서울러 올라와 뚝방집에서 월세를 살면서 떡을 받아 팔았다고 합니다. 서울 상경 뒤에는 부인과 어린 아이를 고향에 남겨두고 홀로 서울로 상경해서 떡집을 차렸고 매주 고향으로 돈을 보냈다고 합니다.

지금도 아내 분은 청양에 거주하고 있고 큰 딸 이영미는 회사 영업을, 둘째 딸 이영주는 대표로 경영을 담당합니다. 아들 이병선은 생산 부서를 맡고 있으며 가족들은 모두 칠갑농산의 2세 경영을 준비하고 있으며 집안 재산은 회사의 연 910억 원 매출의 강소기업입니다.

“내가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은 칠갑농산을 믿고 선택해 준 소비자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나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나는 시련과 맞부딪쳐 이겨냈을 때 어떤 결실이 다가오는지 여러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느낄수 있었다.” – 인터뷰 중에서

칠갑농산 회장 이능구 프로필

  • 본명 이능구
  • 생년월일 1943.10.01. (만 82세)
  • 고향 충청남도 청양 | 국적 대한민국
  • 키 – | 몸무게 – | 혈액형 – | MBTI – | 종교 –
  • 학력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 가족 배우자 -, 딸 이영미, 딸 이영주 (칠갑농산 대표), 아들 이병선
  • 소속 칠갑농산(회장)
  • 데뷔년도 1981년
  • 사이트공식홈페이지블로그인스타그램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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