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수철 나이 부인 결혼 이혼 인생 스토리! (프로필 노래 수상 작품활동)

한국의 지미 헨드릭스 가수 김수철 부인 결혼 이혼 인생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작은 거인 김수철 씨는 어느덧 데뷔한 지 46년차에 달하는데요. 가수 김수철 노래 중 메가 히트곡만 해도 못다 핀 꽃 한송이,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 정신차려 등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가수로서 작품활동 뿐만 아니라 칠성사이다 CF,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 OST,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2002 한일월드컵 등의 음악을 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KBS 시그널송, 로고송 등을 직접 작곡, 편곡하기도 한 뮤지션입니다.

음악 뿐만 아니라, 영화 고래사냥, 금홍아 금홍아 등에서 배우 필모그래피 쌓기도 한 진정한 만능 엔터테이너입니다. 가수 김수철 프로필 노래 작품활동 등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가수 김수철 프로필

가수 김수철 나이 부인 결혼 이혼 인생 스토리! (프로필 노래 수상 작품활동)
가수 김수철 프로필

가수를 처음 꿈꾸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 라디오 방송을 켜 놓고 그림을 그리다가 노래가 갑자기 귀에 확 꽂혔다고 합니다. 흑백 TV에서 나오는 밴드 음악을 듣고 기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무작정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기타 교본이 없어서 코드가 아니라 계이름으로 기타를 쳤다고 합니다. 이후 비틀스 음악을 접하면서 공부 때려치우고 기타를 끼고 하루종일 살았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새벽에 이불 속에 기타 줄에 종이 끼우고 연습해서 김석봉 (한석봉을 비유함)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철물상을 하는 아버지가 보수적이고 엄한 탓에 기타 치는걸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타를 연습해서 고등학생이 되고 난 이후에 3인조 밴드 ‘퀘스천’ 을 만들었고기타리스트로 소문이 나서 명동 성당까지 불려갑니다. 신부님이 조용한 음악을 원했지만 명동 성당에서 하드록을 연주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조금씩 무대와 밴드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수철 가수 데뷔 스토리

중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반에서 1,2 등하는 우등생으로 고교시절까지는 대학보다 공무원이 되려고 했는데 졸업과 함께 5급 공무원(현재 9급) 시험에 합격합니다. 공무원 연수교육과 예비고사까지 갔지만 고등학생 때 가발 쓰고 무교동 살롱 스지큐에서 연주한 것이 들통나면서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로 진학하게 됩니다.

대학교에서 퀘스천(Question)이라는 대학생 밴드를 만들었는데 이때 입소문을 타고 방송국에서 연락이 와서 KBS 젊음의 찬가 방송에서 직접 작사 작곡한 내일, 야속한 사람아 등을 부르면서 데뷔하게 됩니다. 이걸 계기로 이제 본격적으로 가수로 작품활동을 시작합니다.

김수철 작은 거인 밴드

퀘스천으로 활동하다가 MBC 대학가요제에 나가서 헤비메탈을 하다가 1차예선에서 탈락하고 TBC 해변가요제에서도 결국 탈락하고 1978년에 만든 것이 바로 작은 거인 밴드라고 합니다. 이후 1979년에 TBS 대학축제 경연대회에서 일곱 색깔 무지개 노래로 동상을 타면서 세상에 알려지고 1집 앨범을 내게 됩니다.

(여담으로 경연대회에서 떨어진 경험 때문에 동요로 작곡해서 록으로 편곡한다고 합니다. )

그리고나서 레코드사를 옮기고 1981년에 발표한 것이 바로 작은거인2인데 흥행은 실패했지만 여러 매체에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꼽는 앨범입니다. 이후 음악을 잠시 접고 1983년 대학원 행정학과에 들어갔는데 이때 배우 안성기 씨의 전화를 받고 출연하게 된 것이 바로 필모그래피 대표작 영화 ‘고래사냥’입니다.

고래사냥에 캐스팅 된 이유도 단순히 병태를 닮아서라고 합니다. 얼떨결에 술마시러 따라갔다가 놀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출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영화가 빅히트를 치고 1집 앨범인 못 다 핀 꽃 한 송 이 앨범도 메가 히트를 치면서 음악을 계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수 김수철 노래 모음

가수 김수철 노래
가수 김수철 노래
  • 못다핀 꽃 한 송이
  • 별리
  • 내일
  • 정년 그대를
  • 젊은 그대
  • 나도야 간다
  • 정신 차려

전성기 시절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설명하면 동시대의 최고 가수왕이었던 가왕 조용필 씨가 은퇴하기 전에 가수왕이 된 사람이 잊혀진 계절 가수 이용 씨와 함께 딱 2명인데 그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정작 노래가 히트해도 국악을 공부하느라 빚이 2억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든 노래가 바로 ‘정신 차려’인데 소속사의 권유로 빚 갚으려고 만든 곡이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정신 차려 안무도 유명했는데 방송사 PD 부탁에 얼떨결에 중학교 체조를 따라한 것이 댄스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당시 숙취 중에 한 것이 대히트를 쳤다고 합니다.)

김수철 프로필

  • Kim Soochul
  • 생년월일 1957년 4월 7일 (김수철 나이 66세, 고향 서울 출생)
  • 키 164, 몸무게 58kg, 종교 없음
  • 학력 장충중학교, 용산공업고등학교, 광운대 공대 통신공학 학사, 건국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등
  • 가족 김수철 부인 (아내) 오소영 1992년 결혼, 2002년 이혼, 자녀 딸 2명
  • 가수 홈페이지 (kimsoochul.co.kr)

김수철 작품활동

  • 데뷔 1977년 KBS 젊음의 찬가
  • 방송 출연작 불후의 명곡 638회, 싱어즈, 아침마당 등
  • 영화 필모그래피 고래사냥 (1984 출연), 음악 고래사냥2, 칠수와 만수, 서편제, 태백산맥, 창 등

가수 활동 외에도 날아라 슈퍼보드, 서편제 등의 음악으로도 유명합니다. 치키치키 차카차카 노래는 허영만 화백 부탁으로 만화 주제가를 만들었고 서편제 OST는 국악을 배우다 만들게 되었는데 영화 히트와 함께 역대 최초로 백만 장을 판매한 국악 앨범이자 영화음악 앨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국악으로 처음 돈을 벌게 한 것이 서편제 앨범이라고 합니다. 여담으로 처음 앨범을 발표했을때는 안 팔릴 줄 알고 고작 몇 백장 밖에 안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영화가 흥행하면서 백만장이라는 판매고까지 올렸다고 합니다. 덕분에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수철 수상 이력

  • 1978년 제1회 전국대학축제 경영대회 그룹부문 대상
  • 1979년 동양방송 대학축제 경연대회 동상 (네이버 정보 오류입니다.)
  • 1984년 KBS 남자가수상, 프로듀서상, 외신기자상, 내신기자상, 대종상 신인연기상, 문화방송 10대 가수상, 가요톱10 골든상
  • 1986년 한국방송공사 10대 가수상
  • 1993년 제 13회 한국영화평론가상 음악상 (서편제)
  • 1994년 제15회 청룡상 기술상
  • 1995년 제33회 대종상 영화제 음악상 (태백산맥), 제6회 춘사영화예술상 음악상
  • 2010년 제6회 제천국제 음악영화제 제천영화 음악상

김수철 부인 오소영 결혼 이혼 스토리

김수철 전부인 오소영 씨는 11살 연하로 지난 2002년에 결혼 10년 만에 파경을 맞았습니다. 전 부인과는 중매로 만난 이후 어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는 와이프 마음씨에 감동해서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99년 전속 음반사가 사업을 폐지하면서 가족 간의 갈등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당시 저작권 문제로 법정 소송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11년 만에 솔로음반을 발표하느라 대출을 받고 집을 저당잡히면서 경제적인 여건이 최악에 달하면서 부부관계가 악화됐다고 합니다. 결국 이후 부부관계는 회복되지 못했고 2002년 이혼 소송을 시작해서 2004년에야 이혼 절차가 마무리 됐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들의 이혼 이후 어머니가 당시 큰 충격을 받아서 건강이 안 좋아지시는등 아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혼 이후 자녀 양육권은 아내 오씨가 갖기로 했습니다. 이혼 이후 현재 근황 소식은 재혼 없이 계속 혼자서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가수 김수철 인생 스토리

1983년 가요 톱 10 5주연속 1위로 대상을 차지하고 영화배우로서도 신인상을 탄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것은 바로 국악 사랑이 대단한 가수입니다. 1987년 국악 1집부터 시작해서 40여년간 25장이 넘는 국악 앨범을 낸 국악인입니다.

적자로 빚을 지는 상황에서도 국악을 계속하는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에도 우리만의 문화 콘텐츠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라고 합니다. 비록 빌딩과 재산은 없어도 ‘음악 빌딩’을 세운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합니다.

대중음악을 하는 가수를 한때 딴따라라는 말로 비하했었는데요. 적어도 이번에는 평가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쟁만 수십대를 부수면서 국악을 고집한 가수라면 딴따라가 아니라 진정한 뮤지션이 아닌가 싶습니다.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겪었지만 음악만큼은 진짜인 가수 김수철 인생 스토리입니다.

가수 신효범 인생 스토리도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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