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아빠 박준철 골프 조폭 루머? (프로필 나이 아버지 집 차 재산 수상 최근영상 작품활동)

골프 박세리 아빠 박준철 및 박세리 골프 인생을 소개합니다. 골프 박새리 선수가 얼마나 대단했냐면 1998년 이후 애국가 영상에 박찬호 선수와 함께 등장할 정도입니다. 1998년은 메이저리그 박찬호 야구, LPGA 골프 박세리 밖에 없었다고 할 정도인데 불가능에 가깝던 MLB 진출과 LPGA 진출을 이뤄낸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박새리 신화는 1998년부터 LPGA 투어에 참가해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 우승을 시작했는데요. US 여자 오픈 우승 당시에 연못에 들어가서 치던 하얀 박세리 발 때문에 IMF 시절 국민들의 노력과 희망의 상징이 된 골프선수입니다. 엄청난 연습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골프 역사를 바꾼 살아있는 전설이죠.

사실 박세리 선수에게도 아픔이 있는데 세계랭킹 1위를 단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골프여제 애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 등의 슈퍼스타와 리즈 시절을 함께 하는 바람에 세계랭킹 2위에 그친 콩라인이기도 합니다. 거기에다가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나비스코 챔피언십 (현 ANA 챔피언십) 하나때문에 결국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한국 선수 중 최초의 세계랭킹 1위는 신지애 프로이며 박인비 프로, 유소연 프로, 고진영 프로, 박성현 프로 등이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골프 불모지에서 여제를 만든 것이 바로 박세리 아버지 박준철 씨인데요. 세계적인 딸을 하드 트레이닝으로 만든만큼 박세리 아빠 박준철 씨도 딸만큼 유명합니다. 여기에는 와전된 것이 있는데 박세리 아버지 조직폭력배 이야기는 본인이 밝히길 실제 조직 생활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때 잠시 방황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박세리 아버지 박준철 인터뷰 월간조선기사)

대한민국을 빛낸 골프 박세리 프로필 및 골프 대디 박준철 씨 이야기를 알아보겠습니다.

박세리 프로필

박세리 아빠 박준철 골프 조폭 루머? (프로필 나이 아버지 집 차 재산 수상 최근영상 작품활동)
골프 박세리 프로필

1977년생으로 박세리 고향은 광주 광산구지만 생후 열흘만에 대전으로 이사가 유성구에서 자란 대전 출신입니다. 아마추어 시절에 이미 프로 잡는 수준이 아니라 중학교 3학년 때 첫 우승을 거두었으며 고등학교 3학년 때는 7개 대회에서 4번의 우승을 거둘 정도로 당시 프로골퍼들을 능가한 선수입니다.

(최근 빅3를 무너뜨린 테니스 카를로스 알카라스 이상의 임팩트입니다.)

1996년 KLPGA 무대에 입회하자마자 11개 대회에서 우승 4회 준우승 6회에 딱 한 번 6위한 것이 전부였을 정도로 프로 골프선수로 데뷔하자마자 한국 여자골프를 평정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KLPGA 무대는 지금처럼 인기가 없어서 10여개 대회만 치러질 때였는데 박세리 선수가 LPGA에서 활약하자 지금은 KPGA 대회보다 더 인기있는 것이 여자골프가 되었습니다.

1997년 2승을 더 거두고 미국 LPGA 무대 진출을 선언했고 박세리 코치로 유명한 데이비드 레드베터 레슨을 받고 퀄리파잉 스쿨을 통해서 미국 LPGA 무대에 진출했습니다. LPGA Q 스쿨도 크리스티 커(미국) 선수와 함께 공동 1위로 통과하는 등 승승장구 했습니다.

미국 무대 초반(1998년)에는 중위권으로 부진하자 당시 스폰서였던 삼성물산 측에서는 한국에 돌아오는게 어떻겠냐고 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며칠 후 1998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한국 선수 사상 최초로 우승을 하면서 신화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98년 7월 꿈의 무대인 LPGA US 오픈에서 극적인 우승을 차지하며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떠오르게됩니다. 여담으로 박준철 씨는 딸 세리 양이 US 오픈 우승하면 100억을 달라는 조건을 소속사인 삼성물산에 얘기했고 진짜 우승하는 바람에 전무후무한 100억원의 초장기 계약까지 따냈습니다. 

한국 여자골프 인기를 견인했고 아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 등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여성 골프 선수입니다. 2007년에 27점을 채우면서 LPGA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하는 등 골프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이루기도 했구요. 30대에 접어들면서 어깨부상과 입스 등으로 서서히 하락기를 겪다가 2016년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대한민국 골프 대표팀 감독으로 박인비 금메달에 일조를 하며 지금은 후배들을 위해서 박세리 희망재단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골프 박세리 프로필 

  • Pak Seri 
  • 생년월일 1977년 9월 28일 (박세리 나이 47세, 고향 광주 광산구)
  • 키 170, 몸무게 67(현역시절), 혈액형 O형, 종교 불교, MBTI ISFJ 
  • 가족 박세리 어머니 김정숙, 아버지 박준철, 언니, 여동생 등 
  • 반려견 천둥, 모찌, 찹쌀, 시루, 조이, 부디, 대감, 오복 등 
  • 학력 유성초등학교, 갈마중학교, 금성여자고등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
  • 데뷔 1996년 KLPGA 입회 
  • 박세리 소속사 바즈인터내셔널 
  • 현 박세리 희망재단 대표
  • 인스타 계정 seripak1998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골프선수이지만 2012년 KLPGA KDB 대우증권 클래식 우승을 마지막으로 골프선수로서는 내리막 길을 걷게 됩니다. 여담으로 마지막 우승 당시에 잠시 해프닝이 있었는데 너무 대선배가 우승한 탓에 세레모니가 어색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2012년이면 한국나이로 36세로 당시만 해도 30대가 넘어서까지 운동을 하는 여자 골퍼가 없던 시절입니다. 

박세리 수상 이력 

  • 미국 LPGA 통산 25승  
  • 1998년 체육훈장 맹호장, LPGA 신인상 
  • 1996년 KLPGA 신인왕, 상금왕
  • 2001년 한국여자프로골프 대상 
  • 2003년 LPGA 베어 트로피 
  • 2007년 미 LPGA 명예의 전당 입성
  • 2010년 제48회 대한민국체육상 청룡장 
  • 2020년 대한골프협회 공로상 
  • KLPGA 통산 14승 (아마추어 6승 포함)

박찬호 선수도 뺄수가 없는데 두 선수는 1997년 외환 위기 속에서 스포츠 스타를 넘어서 당시에는 신화적인 영웅으로 군림한 선수입니다. 박세리 선수의 성공 이후에 땅콩 김민현 프로, 박지은 프로, 한희원 프로 등이 LPGA 무대에 도전해서 우승하면서 지금의 KLPGA와 골프 인기를 견인한 선수입니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최혜진 프로김효주 프로이예원 프로 등 한국여자골프가 LPGA를 주름잡게 된 역사의 시작인 선수입니다. 

(세리키즈 이야기도 유명한데 지금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은 박세리 키즈들을 보고 성장한 선수들이니 원조의 원조 격입니다.)

박세리 재산 얼마나 되나요?

  • 박세리 통산 상금  : LPGA 기준 12,583,712 달러 (한화 약 200억원 이하)

박세리 결혼 소식과 함께 재산에 대해서 항상 화제인데 리치 언니로 유명할 만큼 통산 상금으로만 천만 달러를 넘긴 선수입니다. 2024년 us 오픈 우승 상금이 240만 달러라 얼마 안되는 것 같지만 1998년 박세리 US 오픈 우승 상금은 고작 26만 7500달러 (총상금 150만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1억불 이상의 금액이라고 봐도 되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알려진 재산 규모는 공식 상금을 제외하고 그동안 찍은 CF 광고, 스폰서 계약금 등을 생각하면 그동안 골프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수입규모만 당시 시세로 천억대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절반 이상 나가는 세금 등을 생각하면 실제 수입은 회계사만 알 정도라고 합니다.

박세리 차 자동차 차종과 가격은?

전참시 방송에서 공개되어서 화제를 모았는데 영국의 유명한 슈퍼카 애스턴 마틴 DBX 707입니다. 애스턴마틴 가격은 3억원대에 달하며 나혼산 방송 때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ESV를 애마라고 소개한 바있습니다. 자동차 취향은 롱바디형을 좋아한다며 개인 취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국내 자동차 중에는 기아 K9을 자신의 애마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박세리 집 아파트 위치는 어디?

  • 성수동 서울 힐스테이트 가격 15억 ~46억 (2022년 이사)

우승 상금만 해도 200억에 가까운데 그보다 더 많은 스폰서 계약금 등을 아버지 박준철 씨를 드렸다고 합니다. 현재는 박세리 희망재단을 통해서 골프 후배 육성을 위한 박세리배 골프대회 등을 열고 있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아버지에게 9억짜리 시계까지 플렉스 했다고 할만큼 리치언니이기도 합니다.

미국 팜스프링스, 올랜도 등에도 박세리 대저택이 있다고 전지적 참견 시점 방송에서 밝힌 적이 있는데 집 안에 골프장, 수영장, 영화관 등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주로 한국에서 활동하는 탓에 미국에 있는 집은 사실상 거의 비워져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박세리 작품활동

  • 방송 출연작 돌싱포맨, 런닝맨, 아빠를 부탁해, 전지적 참견 시점, 나 혼자 산다, 세리네 밥집, 더 퀸즈, 스포츠 골든벨, 노는 언니, 우리끼리 작전:타임, 세리머니 클럽, 쓰리박 : 두 번째 심장,정글의 법칙 등 
  • 드라마 출연작 재벌X형사 (2024년 특별출연)

은퇴 이후 박세리 근황은 현재는 여성 스포츠인 출신 방송인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한때는 고정 출연 중인 박세리 방송 프로그램만 해도 노는 언니 2, 우리끼리 작전 타임, 내일은 영웅 깐부 with 등 다수일 정도로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유튜브 세리TV(구독자 35만명)도 함께 운영 중입니다). )

박세리 최근영상 

박세리 아빠 박준철
박세리 아빠 박준철

아빠 박준철 골프 대디 이야기

박준철 씨는 배구, 달리기, 씨름, 기계체조 등 운동신경을 타고나서 전국체전에 나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학교를 그만두고 잠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성인이 된 후 지금의 박세리 엄마 김정숙 씨를 다시 만나서 결혼했는데요. 박세리 선수도 아버지를 닮아 달리기, 멀리뛰기든 남다른 운동신경을 보였는데 중학교 때 소년체전에서 투포환으로 우승한 이력도 있습니다.

32살 때 처음 골프를 접했는데 6개월 만에 갈삐뼈가 3대가 나갈 정도로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그 덕에 6개월 만에 싱글을 기록했고 전국체전에 대전 대표 선수로 출전하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내기 골프가 유행이었는데 나중에는 친구들이 연락을 안 받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박세리 골프 시작한 계기는?

서른 일곱 살 무렵 어머니, 누나, 형님이 살고 있는 하와이로 가게 되었는데 잠시 생계를 위해서 접시를 닦다가 다시 골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와이에서는 골프연습장이 너무 멀어서 잔디밭에서 홀로 어프로치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치는 건 좋은데 다시 주으러 가는 것이 너무 싫었다고 합니다. .

그래서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인 딸 세리 양에게 8번 아이언을 주고 공을 자기한테 치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뜻밖에도 초등학생인 박세리 선수가 쳤던 공이 자신의 앞에 딱딱 떨어지는 천부적인 운동신경을 보였다고 합니다. 박세리 선수가 골프가 재밌다고 하자 딸의 골프 재능을 키우겠다고 결심했고

여담으로 이후 한국에 와서 죽다 살아나면서 딸에게 골프를 가르쳐야겠다고 골프 대디가 되었다고 합니다. 

박세리 선수도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으로 돌아왔고 육상 특기생으로 운동을 계속하면서 아버지에게 골프를 배웠다고 합니다. 정식으로 골프 코치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아버지 박준철 씨가 아놀드 파머, 벤 호간, 잭 니클라우스 등의 테이프를 보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테니스 윌리엄스 자매 영화 킹 리차드 (나무위키) 역시 이렇게 딸을 교육시킨것으로 유명하죠.)

박세리 골프 신화의 시작

첫 번째 나간 대회가 중학교 2학년 10월 때 골프 다이제스트에서 주최하는 주니어 대회였는데 당시 3등을 했습니다. 그 때 다른 학부모들과 인사하면서 지내려고 했지만 무시하는 통에 수첩에 이름까지 적을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고 합니다. 당시 가정형편 때문에 골프를 그만둬야할 위기까지 닥쳤지만 오히려 더 강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 때 한 훈련이 바로 아파트15층을 오르내리는 훈련이었다고 합니다. 

(90년대에만 하더라도 골프는 부잣집만 치는 귀족 스포츠였습니다.)

여유없는 형편 때문에 지방을 가더라도 싸구려 여관에서 잤고 캐디 백 역시 박준철 씨가 직접 맸다고 합니다. 처음으로 우승한 대회가 중학교 3학년 때 전국 중고연맹 회장배 경기였고 덕분에 프로 무대인 KLPGA 대농 주최 라일 앤 스코트 오픈에 출전했다고 합니다. 1992년 9월 우여곡절 끝에 출전한 제4회 라일앤스코트 여자오픈에서 원재숙 골프선수를 제치고 연장 끝에 우승하는 대형 사건이 터진 것이 박세리 신화의 시작이었습니다. 

(박세리 라일 앤 스코트 여자오픈 우승 기사)

라일 앤 스코트 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프로골퍼 잡는 아마추어로 등극해 프로 데뷔 전에 이미 6승을 거두면서 한국여자골프 최강으로 우뚝 섭니다. KLPGA 무대를 평정하고 삼성물산과 협상을  1년 6개월 간 한 끝에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10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KLPGA 대표 선수가 되었습니다. 1996년 KLPGA 무대에서 4승을 거두었는데 11개 대회에 참가해 모두 톱10에 들었고 우승 4회, 준우승 6회라는 말도 안되는 성적을 내고 1998년 LPGA 투어로 진출하게 됩니다. 

박세리 아버지 공동묘지 훈련 사연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박세리 골프 훈련을 위해서 밤늦게까지 훈련을 시킨 것이 와전되었다고 하는데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초등학교 육상 선수였다고 합니다. 유성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할 때도 대전 갈마중학교 육상 특기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운동연습을 끝내고 집에 오면 밤 10시였고 그 때부터 골프 연습장에서 골프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90년대에는 딸 사랑이라고 했지만 지금 보면 아동 학대라고 생각할 만큼 가혹한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세리 공동묘지 훈련 루머가 생겼었는데 진짜 공동묘지를 간 것은 아니고 밤늦게까지 훈련하고 가다 보니 주변 분위기가 공동묘지 같았다는 이야기가 와전됐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알아두셔야 할 것은 지금은 야간 골프 등도 성행하지만 90년대에는 조명 문제 등으로 정말 열악한 상황에서 훈련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딸을 훈련하라고 시킨 다음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서 갔다가 술 한 잔 하는 바람에 데리고 오는걸 깜밖했다고 합니다. 집에가서 박세리 엄마에게 아직 안 돌아왔다는 얘기를 듣고 아차 싶어서 다시 연습장으로 돌아가보니 새벽 4시까지 골프채를 잡고 훈련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유성 골프 연습장 관리인이 열 두 시가 되도 안 가서 퇴근을 못하는 해프닝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세계를 휘어잡는 선수가 될 거라는 말도 나왔다고 합니다. 

박세리 희망재단 아버지 박준철 고소 

박세리 희망재단은 2024년 6월 12일 홈페이지에 공식적으로 박세리 아빠 박준철 씨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습니다. 박세리 아버지 고소 사유는 딸 박세리 감독의 이름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사문서 위조 혐의라고 합니다. 박세리 재단은 국제골프스쿨 및 박세리 국제학교 유치, 골프 아카데미 유치 등과 관련해 사업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박세리 아버지 빚 금액 얼마?

아버지와의 고소 문제를 고백한 이후에 아빠 빚 문제도 함께 고백했습니다. 예전에 본인 인터뷰로 밝힌 것만 골프선수로서 받은 상금 126억원 상당을 모조리 아빠 빚 변제에 썼다고 한 적도 있는데요. 더는 갚을 수 없을 정도로 한계에 다달랐다고 했고 결국 박세리 대전 집 4층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박세리 아버지 빚 얼마 정도인지 일반인은 상상도 안 되는 규모라고 합니다.

박세리 결혼 했나요?

박세리 남자 친구 로렌스 첸 (홍콩계 미국인) 등 2번이나 공개열애를 했었습니다. 골프 스쿨에서 만났다고 알려진 로렌스 첸 집안은 2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이 있었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3년에 다시 한 번 재미교포와 장거리 연애를 한다고 밝혔었지만 결국 결혼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남자친구는 미국과 한국이라는 결혼의 현실적 문제라고 합니다.)

결혼은 안 했고 미혼인데 이혼 루머는 당연히 사람들의 오해에서 생겼는데 박세리 이혼 루머의 시작은 바로 패션쇼에서 입은 박세리 웨딩드레스 사진 때문인데요. 고 앙드레김 패션쇼에 나갔을 때 웨딩드레스를 입고 런웨이 쇼에 섰고 이 때문에 결혼식 사진으로 오해를 사기도 했습니다.

방송에서 박세리 남편 이야기에 이혼한 돌싱인가 오해를 받는데 웨딩드레스는 입었지만 결혼한 적은 없는 미혼입니다. 결혼 이상형에 대해서 묻는 질문에는 박세리 선수는 친구 같은 연상으로 배우 유해진, 정우성 같은 사람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여러 번 기회가 있었지만 결혼을 못한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 반대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로렌스 첸과 만난다고 밝혔을 때에는 반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박세리 선수는 20대 초반이었고 결혼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고 합니다.

그동안 박세리 남친들은 모두 배려심 깊은 남자들이었다고 합니다. 결혼에 관해서 항상 마음은 열려있다고 생각을 공개했습니다. 여담으로 평소 때 무뚝뚝한 이미지로 강하지만 남자친구와 연애할 때는 애교도 부린다고 합니다. 골프 여왕이 아닌 여자 박세리 결혼 소식이 있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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