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전 국회의원이자 석좌교수는 60년간 직간접적으로 여야를 넘나들면서 킹메이커로 정치에 참여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을 시작으로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이재명까지 6명의 대통령의 당선에 킹메이커로 활약했습니다.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40년 가까이 중앙 정치에서 대부분의 역대 대통령들과 인연을 맺었던 살아있는 현대사입니다.
그동안 지켜본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집권 후 무엇을 할지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으며 대통령 후보 시절과 당선 이후 생각이 바뀌어 일관성이 없다는 혹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학자로 대한민국 현대사의 킹메이커였던 김종인을 소개합니다.

목차
킹메이커 김종인 의원
1940년 7월 11일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 현재의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에서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의 손자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김재열은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법조인이었으나 소년기에 요절하였고, 어머니 이필기 슬하에서 성장하였습니다.
1950년 열린 제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유세장을 찾아다닐 정도로 선거와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광주서중학교 재학 중 상경하여 중앙중학교, 중앙고등학교(49회, 1959년 졸업)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학부 독어과를 거쳤습니다. 1960년 2월 육군에 입대하여 1962년 2월 상병으로 귀휴전역하였고, 1963년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같은 해 제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당 통합을 주도하던 조부 김병로의 비서 역할을 수행하며 처음 정계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1964년 조부가 사망한 후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 대학교에서 유학하였고, 이곳에서 1969년 경제학 석사 학위를, 1972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독일 유학당시만 해도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와 경제민주화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로 1973년 3월 귀국하여 32세의 나이로 서강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과 조교수에 부임하였습니다. 경제학으로 서강학파로 분류되나, 선성장 후분배와 재벌 육성을 중심으로 한 압축 성장을 주장해온 남덕우 등 서강학파 선배들과는 입장을 달리하는 2세대로 평가됩니다.
유신 시절부터 박정희 정부에서 정책자문역으로 경제개발계획 수립에 참여하였고, 김재익과 함께 서독의 부가가치세를 연구하기 위해 출장을 다녀오기도 하였습니다. 1977년 당시 보건사회부장관이었던 신현확의 반대를 무릅쓰고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하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이후 전국민 의료보험 시행의 초석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인 헌법 제119조 2항 신설을 주도하였으며, 이 조항은 이후 ‘김종인 조항’으로 불리며 정치적, 경제적 이념을 상징하는 중요한 족적이 되었습니다.
※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정치 입문은 1963년 조부 김병로의 비서로 시작해서 서강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중,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전두환, 노태우의 민주정의당 창당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습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49번)로 당선되며 여의도 국회에 입성하였고,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정의당 전국구(32번)로 재선에 성공하였습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지역구인 서울 관악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이해찬 후보에게 패배하며 낙선하였습니다.
낙선 이후 1989년 1월부터 7월까지 국민은행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같은 해 7월부터 1990년 3월까지 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1990년 3월부터 1992년 3월까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으로 활동했습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11번)로 당선되어 3선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1993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후 기소되었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의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하였습니다.
이후 정치와 거리를 두며 야인으로 지내다가 노무현의 자문 인연으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되어 비례대표(2번)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하였고, 4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지지했지만 낙선하면서 다시 야인이 됐습니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이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되어 경제민주화 공약 설계를 맡았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 달성에 기여하였습니다. 같은 해 9월부터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후보의 대선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겸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이끌어 170석이라는 압승을 거뒀고,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2번)로 당선되며 5선 국회의원으로 헌정 사상 최초로 비례대표만으로 5선 의원이 됐습니다. 이후 2016년 8월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직에서 퇴임하였습니다.
2017년 4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일주일 만에 불출마를 선언하였고, 이후 안철수 국민의당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장을 맡았습니다. 2020년 3월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었고, 총선 후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어 2020년 9월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변경하는 작업을 주도하였고, 2021년 4월까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했고 이후 윤석열 당선의 도우미로 활동했습니다.
이후 2024년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맡았으며, 같은 해 개혁신당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을 지냈습니다. 이 외에도 사단법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 재단법인 보통사람들의시대 노태우센터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치 성향은 독일에서 수학한 경제학자로서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존중하지만, 국가의 적극적인 규제와 조정을 통해 경제력 집중을 방지하고 사회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사회적 시장경제’에 가까운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전통적인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으로 단정하기 어려우며, 실용적이고 상황론적인 접근을 중시합니다. 이념적 유연성으로 민주정의당,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미래통합당 등 이념을 달리하는 정당들을 오가며 ‘킹메이커’로 활동하며 ‘여의도 포레스트 검프’로 불렸습니다.
김종인 수상 및 주요 이력
- 1980 보국훈장 천수장
- 1992 청조근조훈장
- 2001 한국외국어대학교 2001 외대인상 특별공헌상
- 2008 독일 일등십자공로훈장
- 2014 자랑스러운 중앙인상
※ 주요이력
- 1973년 –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부임
- 1981년 – 제11대 국회의원 당선 (민주정의당, 전국구, 초선)
- 1985년 – 제12대 국회의원 당선 (민주정의당, 전국구, 재선)
- 1989년 – 국민은행 이사장 역임
- 1989년 – 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 취임
- 1990년 –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취임
- 1992년 – 제14대 국회의원 당선 (민주자유당, 전국구, 3선)
- 1993년 –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의원직 상실
- 2004년 – 제17대 국회의원 당선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4선)
- 2011년 –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 위촉
- 2012년 –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 역임
- 2016년 –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및 선거대책위원장 역임
- 2016년 – 제20대 국회의원 당선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5선)
- 2017년 – 국민의당 개혁공동정부준비위원장 역임
- 2020년 –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및 비상대책위원장 역임
- 2020년 –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역임 (당명 변경 주도)
- 2021년 – 여의도연구원 이사장 역임
- 2024년 –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 및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 역임
※ 이승만부터 이재명까지 김종인이 보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역사
김종인 국회의원 선거이력
- 1981년 :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정의당 전국구 49번 당선 (초선)
- 1985년 :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정의당 전국구 32번 당선 (재선)
- 1988년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 서울 관악구 을 출마, 27.12% 득표로 2위 낙선
- 1992년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 민주자유당 전국구 11번 당선 (3선)
- 2004년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2번 당선 (4선)
- 2016년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2번 당선 (5선)
김종인 작품활동
※ 출간 도서
-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2012년, 2017년 개정판)
- 영원한 권력은 없다 – 회고록 (2020년)
-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 (2022년)
- 독일은 어떻게 1등 국가가 되었나 (2023년)
※ 방송활동
일선 정치에서 물러난 이후 정치 평론가로서 방송에서 정치 현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수십년간 중앙정치의 킹메이커였지만 한국의 대통령은 집권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김종인 부인 & 재산
아내 김미경(1945년생)은 김재익의 중매로 1975년경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35세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배우자 김미경은 교수로 활동했으며 장인은 김정호 전 한일은행장이며, 처삼촌은 박정희 정부에서 재무부장관과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으로 대표적인 정치 명문 집안입니다.
친인척 관계로는 매형 박봉환 전 동력자원부 장관, 4촌 처남으로 이진설(노태우 정부 건설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윤영철(대법관, 헌법재판소장), 이택돈(전 신민당 국회의원) 등이 있습니다. 또한 강만수 사단의 일원으로 청와대 경제수석, 필리핀 대사, 지식경제부 장관을 지낸 최중경이 5촌 조카사위이며, 아랍에미리트 대사를 지낸 권태균 전 조달청장도 5촌 조카사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 김종인 가족 관계
- 조부: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 부친: 김재열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 합격)
- 모친: 이필기 (1916~2015)
- 형제: 큰누나 김종은, 작은누나 김종현
- 배우자: 김미경
- 자녀: 1녀
정치인 김종인 근황
원로 정치인으로서 여전히 방송 활동과 인터뷰를 통해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을 지속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국민의힘에 대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원인에 대한 인식 없이 보수 결집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이대로는 2018년 지방선거와 같은 참패를 반복할 것이라고 비판과 경고하고 있습니다 . 2024년 8월 응급실 뺑뻉이 사건 이후 건강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 전 비대위원장이 보는 국민의힘
정치인이자 전 국회의원 김종인 프로필
- 영어: Kim Chong-in / 한자: 金鍾仁 / 본명: 김종인
- 생년월일: 1940년 7월 11일 (나이 85세)
- 고향: 경기도 시흥군 동면 신림리 (現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 국적: 대한민국 / 본관: 울산
- 현재 거주지 (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구기동
- 키: 178cm / 몸무게: – / 혈액형: – / MBTI: – / 종교: 개신교 (장로회) → 가톨릭 (세례명: 알렉산데르)
- 학력: 서울덕수국민학교 (전학), 광주서석국민학교 (졸업), 광주서중학교 (전학), 중앙중학교 (졸업), 중앙고등학교 (49회 / 졸업), 한국외국어대학 외국어학부 (독어독문학 59 / 학사), 뮌스터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석사), 뮌스터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박사)
- 군대 이력: 대한민국 육군 제20보병사단 상병 귀휴전역 (1960년 2월 15일 ~ 1962년 2월 15일)
- 가족: 부인 (아내) 김미경, 자녀 1녀, 부친 김재열 (1913~1944), 모친 이필기 (1916~2015)
- 소속정당: 무소속
- 소속 대한발전전략연구원(이사장)
- 의원 선수: 5
- 개인 SNS: 페이스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