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의 영화배우 최민식 와이프 김활란 결혼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명량, 디즈니플러스 카지노 등 최민식 영화, 드라마는 작품성과 함께 흥행성을 갖춘 유일무이한 배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메소드 연기의 대가로 정치인부터 백수 건달까지 모든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이기도 합니다.
설경구, 송강호 등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연극무대부터 시작해서 드라마, 영화 모두에서 흥행과 비평을 잡은 배우는 최민식이 유일하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대배우에게도 많은 아픔과 시련이 있었는데 메소드 기법을 바탕으로 연기를 하다보니 영화 악마를 보았다 살인마 역을 연기할 때는 후유증도 심하게 겪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다크나이트 조커 히스 레저와도 비견될만한 연기였습니다.)
그런데 연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성우로서도 엄청난 재능을 보여준 적 있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청둥오리 성우로 연기만 잘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한국영화 흥행 1위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으로도 유명한데 만약 한산, 노량도 직접 연기를 했었다면 후속작도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순신 장군 연기가 너무 부담되서 명량 이후로는 안 하겠다고 해서 무산됐다고 합니다.)
유일하게 배우로써 약점이 있다면 바로 영어 실력입니다. 뤽 베송 감독 영화 ‘루시’에서 스칼렛 요한슨, 모건 프리먼 등과 함께 캐스팅 됐지만 영어를 너무 못해서 분량이 많이 날라갔다고 합니다. 2014년 명량 대박과 함께 천만 배우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후로는 흥행부진에 빠지면서 처음으로 슬럼프를 겪고 있기도 합니다.
영화배우 최민식 프로필, 필모그래피 및 인생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목차
최민식 와이프 김활란 결혼 스토리
대일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기자의 꿈을 키웠고 동국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하면서 대학 무대에서 이미 메소드 연기력을 선보였다고 합니다. 군대 제대 이후 연극계로 뛰어들었는데 당시 연기 천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최민식 전 부인 이화영 이혼 사연
각광받는 새로운 연극계 스타로 연극 ‘실비명’에서 전 와이프 연극배우 이화영 씨와 동반 출연하면서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연극 작품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고 1990년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습니다. 당시 나이는 29세로 야망의 세월 꾸숑 역으로 인기를 막 얻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최민식 김활란 부부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고 6년 간의 짧은 결혼 생활 끝에 1996년 이혼했습니다. 당시 알려진 이혼사유는 성격차이로 전 아내 이화영 씨는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살다가 2014년 한국으로 돌아아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현재까지도 꾸준히 드라마, 영화 등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부인 이화영 씨와 이혼 이후 최민식 씨는 1997년 ‘사랑과 이별’을 끝으로 드라마 출연을 고사했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영화 ‘쉬리’로 대종상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하면서 드라마 출연을 안하고 있는데 열악한 환경과 촉박한 시간 때문에 회의감까지 느껴서 출연을 고사했다고 합니다.
최민식 김활란 결혼 스토리!
최민식 부인 김활란 씨는 9살 나이차로 1996년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던 것을 소속사 대표 전영민 씨의 소개로 처음 만나게 됐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1년 6개월 간의 짧은 열애 끝에 1999년 재혼을 했고 현재까지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내 김활란 씨는 칸 영화제 영화 올드보이 시사회 때 처음 얼굴이 알려졌는데 연예인 못지 않은 미모에 큰 키로 엄청난 화제를 모이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촬영장에서도 전화를 주고 받을 정도로 재혼 이후로는 잉꼬부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연인 일때는 아버지 사업장이 있는 일산과 집 부근에서 데이트를 했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당시 와이프 김활란 씨의 팬클럽이 생기기도 했었습니다.)
와이프 김활란 씨는 대원예술고등학교 출신의 발레리나였다고 합니다. 결혼 당시에 장인은 이혼남이라는 이유로 잠시 결혼을 반대하기도 했지만 딸 활란 씨의 완강한 의지에 결국 승낙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장모님은 서울의 달 때부터 사위인 민식 씨의 팬이라 결혼을 반겼다고 합니다.
원래는 1999년 1월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었지만 쉬리가 대박나면서 일정을 늦춰서 가을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도 와이프 김활란 씨에게 전화를 걸어서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당시 결혼식 사회는 배우 한석규 씨가 맡았는데 예전 한석규 결혼식 때 최민식 씨가 사회를 본 인연이 있습니다.
최민식 프로필
후배들로부터 존경받는 선배 중에 한 명입니다. 작품 내에서 후배나 조연급 배우들에게 오히려 더 강렬한 연기를 선보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선배로도 유명합니다. 배우가 되기까지 우여곡절도 있었는데 4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폐결핵에 걸려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까지 내렸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탤런트 최민식 씨는 1962년생이지만 동국대 82학번입니다.)
그때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절로 데려가서 한달 동안 새벽에 절을 하게 하고 사찰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건강한 공기를 마시게했다고 합니다. 법당에 절을 하다가 피를 토하면서 피범벅을 만들 정도로 심각했지만 한달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첫사랑을 만나서 연인이 되었지만 고 3때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잠시 헤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다른 남자들과 쌍쌍으로 있는 모습을 보고 첫 사랑과 결별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첫사랑 그녀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대학교 입시 때 합격자 발표 때 없었고 그녀는 서울예대로 진학했다고 합니다.
최민식 이경규 동국대 인연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기와 연출을 꿈꾸고 동국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한 후 만난 것이 바로 개그맨 이경규 씨였다고 합니다. 당시 신입생 환영회에서 온갖 욕설이 난무했고 그 때문에 선비같았던 이경규와 친해졌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두 사람은 동국대 삼수갑산 멤버들입니다.
가장 애착이 가는 후배로 배우 류승범 씨를 꼽는다고 합니다. 함께 영화 주먹이 운다 출연 당시에 복싱을 같이 하기도 했는데 당시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등 감수성이 예민했다고 합니다. 그때문에 뺨까지 때렸지만 눈물까지 보이는 류승범과 오히려 더 친해졌다고 합니다.
1990년 야망과 세월로 데뷔한 이후 35년차에 접어든 현재 접어들었지만 최근 소속사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와 결별한 이후로는 매니저 없이 혼자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1년 이후로는 출연료부터 직접 협상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배우 최민식 프로필
- Choi Min Sik
- 생년월일 1962년 5월 30일 (최민식 나이 62세, 고향 서울 출생)
- 키 177, 혈액형 B형, 종교 불교, 군대 육군 병장 만기 제대
- 학력 대일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학사
- 가족 배우자 김활란 (1999년 결혼), 자녀 없음
- 인스타 없음
최민식 동생 배우 최광일
4남 1녀 중 차남으로 알려져 있는데 배우 최광일 씨가 바로 친동생입니다. 형이 워낙 대단한 연기파 배우라서 상대적으로는 필모그래피가 덜 알려져 있지만 얼마전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신명휘 시장 역으로 열연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참고로 형제가 서로의 연기에 대해서 진짜 못됐다라며 칭찬을 했다고 합니다.
배우 김혜수 김동현, 하정우 차현우 형제처럼 가족인지 모르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연극계에서는 형 못지않게 연기파 배우로 유명한데 연극배우로만 활동해온 탓에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넷플릭스 더 글리로, 1987, 영화 백두산 등으로 최근 형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최민식 작품활동
- 연극 데뷔 1982년 우리 읍내 (연출가)
- 드라마 데뷔 1990년 야망의 세월 꾸숑
- 드라마 출연작 서울의 달, 마지막 연인, 그들의 포옹, 아빠는 시장님, 사랑과 이별, 디즈니 + 카지노 등
- 방송 출연작 힐링캠프, 유퀴즈 온 더 블럭 231회 등
처음 얼굴을 알린 작품이 바로 데뷔작인 야망과 세월인데 당시 반듯한 남자인 꾸숑 역으로 배우 이휘향 아들 역으로 잘생긴 외모와 연기력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배우 윤다훈 대타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당대 최고의 작가 나연숙 씨가 꾸숑 역에 신인배우를 고집해서 연극 ‘에쿠우스’에 출연 중이던 최민식 씨가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잠시 소강기를 지내다가 1년 후배 한석규 씨와 함께 출연한 서울의 달에서 다시 한 번 연기 포텐을 터트리면 정상급 배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 성공과는 별개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과 전 부인 이화영 씨와의 이혼 등으로 또 한 번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최민식 필모그래피
- 최민식 영화 데뷔작 1988년 수증기
- 영화 출연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넘버3, 해피 엔드, 쉬리, 파이란,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신세계, 루시, 명량, 대호,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파묘, 행복의 나라로 등
1992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영화계에서도 얼굴을 알린 다음 넘버3, 쉬리 등에서 연속으로 흥행에 성공하며 주연상까지 수상하면서 본격적으로 배우로서 꽃을 피웁니다. 사실 쉬리 박무영 소좌는 조연으로 분량도 많지 않았지만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주연상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최민식을 월드스타로 만든 것이 바로 영화 올드보이 오대수 역으로 대한민국 영화제는 물론이고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으로 한국영화계 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이때 대출업체 리드코프 광고 출연과 함께 최고의 리즈 시절에 잠시 휴식기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올드보이 때 자장면을 좋아해서 만두 대신 짜장면 먹방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물론 거절!)
2005년 다시 한 번 박찬욱 감독과 배우 이영애 씨와 함께 친절한 금자씨를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친절한 금자씨 모티브가 바로 영화 파이란인데 원제가 친절한 강재 씨(극 중 최민식 배역)였다고 합니다. 이 영화로 이영애는 각종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휩쓸었습니다.
이후 ‘느그 서장 남천동 살제’로 유명한 범죄와의 전쟁으로 다시 한 번 흥행과 작품성까지 챙기면서 다시 한 번 최고의 배우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 때 잠시 할리우드로 외도를 해 뤽 베송 감독의 루시에 출연했는데 월드 박스오피스 4억 6천만 달러의 대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당시 연기력은 인정받았지만 영어를 못해서 일부러 한국어로 대사를 바꿨다고 합니다.
뛰어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충무로 트로이카 중에서 유일하게 천만 영화가 없는 것이 아킬레스 건이었다고 합니다. 2014년 명량이 개봉하면서 천만 관객을 넘어서 1700만 관객으로 역대 흥행 1위를 차지하면서 천만 관객 배우로 자리 매김하기도 했습니다.
최민식 수상 이력
- 대종상 남우주연상 : 1999년 쉬리, 2004년 올드보이, 2014년 명량
-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 2001년 파이란, 2004년 올드보이, 2012년 범죄와의 전쟁
-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 1999년 쉬리, 2004년 올드보이, 2015년 명량
- 2004년 대한민국 영화대상 남우주연상 등
- 2004년 옥관문화훈장 수상
배우로서 발자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올드보이, 루시 흥행으로 대한민국 배우로서는 최초로 한류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출연한 영화 대호, 특별시민, 침국, 천문 등이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으로 잠시 휴지기를 거치다 카지노를 거쳐서 다시 한 번 부활하고 있는 중입니다.
영화 파묘 (2024)를 통해서는 유해진, 김고은 등과 함께 필모그래피 사상 최초로 오컬트 영화에도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출연 영화가 부진했던 탓인지 몰라도 영화 파묘 홍보를 위해서 유퀴즈 출연까지 결정했다고 합니다. 영화 파묘 출연 이유에 대해서도 공개했는데 장재현 감독이 산 술 몇잔에 홀라당 넘어갔다고 합니다.
출연하는 작품을 할 때마다 사람을 얻어간다고 합니다. 사람을 알아가고 사람에 대해서 연구하고 그러다보니 삶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영화가 곧 공부라고 합니다. 연극을 포함하는 연기 인생 42년, 매체 연기 35년의 배우지만 여전히 첫 촬영 때는 긴장된다고 합니다. 배우 인생으로서 가을에 왔다는 최민식 연기 많이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