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 3 사건을 일으킨 남로당 유격대 진압작전을 펼치다 경비대 내의 남로당 프락치 손선호, 문상길 에게 암살당한 박진경 대령이 이재명에 의해서 국가유공자가 취소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
해방 이후 국군 창설 당시에 군인으로 1948년 제11연대장을 역임하던 중 5월 30일 남로당이 일으킨 4.3사건 진압작전을 했었습니다.
제주 4 3 사건 진압 중에 사망했기 때문에 경상남도 지역에 국가유공자가 되었고 제주도에서는 충혼묘지에 추도비가 1952년 세워져 있으며 창군 동우회와 5연대 창설 동지회가 1990년 남해군 군민공원에 동상까지 건립되어 있습니다.
제주 4.3 당시 남로당 무차별 체포작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미군정의 지시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려는 것을 방해하던 제주도 남로당 인민 유격대와의 작전 중에 부하들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이후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하면서 국가유공자에 지정되었습니다.
(을지무공훈장은 1등급인 태극 무공훈장 다음으로 높은 무공훈장입니다.)
국가 유공자 지정과 취소로 주목받는 4 3 제주 박진경 대령을 소개합니다.

목차
미군정을 따른 제주 4 3 사건 박진경 중령
1918년 12월 22일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서 박병철의 다섯째 아들로 출생했습니다. 진주고등보통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일본 오사카외국어대학 영어과를 졸업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학병으로 징집되어 일본 마쓰도 육군공병 예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공병 소위로 임관되어 제주도에서 일본군 38군단 소속으로 복무했습니다.
광복 후 부산에서 우파 단체인 경남국군준비대와 부설 군관학교에서 활동했습니다. 1946년 1월 29일 용사로 입대하여 1946년 4월 25일 소위로 현지 임관되었습니다. 이후 1중대 보급관과 중대 인사계, 1대대 부관, 연대부관을 거쳐 송호성 조선경비대 총사령관 전속부관과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조선경비대 총사령부 인사국장을 지냈습니다.
1948년 제주 4.3 사건 발발 후 5월 6일 제9연대장으로 취임했고 진압을 망설이던 연대장 김익렬과 달리 남로당 유격대에 대한 강경 진압 작전을 주도했습니다. 제9연대 1대대를 배속받아 4개 대대로 구성된 부대를 지휘하며 5월 30일부터 6월 17일까지 대유격작전을 펼쳤습니다. 작전 기간 해안에서 5km 이상 산악지역을 담당하여 포로 약 650명을 합동 심문센터에 인계하고 사살 인원 25명을 기록했습니다.
당시에는 남로당 토벌 공적으로 6월 1일 대령으로 진급했지만 6월 18일 새벽 제주도 연대본부 기숙사에서 부하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에 의해 암살되었습니다. 암살 배후는 남로당 중앙당 지령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장례는 육군장 제1호로 서울에서 치러졌으며 1950년 12월 30일 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작전은 미군정 지시 하에 수행되었으며 주민과 유격대를 분리하여 입산 주민들의 하산을 촉진하는 효과를 냈지만 무차별 체포로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박진경 대령은 제주 4.3 사건 진압 과정에서 미군정과 경비대의 작전 절차를 따랐으며 선배와 동료, 부하로부터 인격자와 참군인으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제주 4 3유족들에게는 비판받는 인물입니다.
당시 4 3 토벌 작전은 유격대와 주민 분리를 통해 사태 장기화를 막으려 했으나 내부 동요와 민중 반감을 초래했다는 연구 평가도 있습니다. 2025년 영화 <건국전쟁2>에서 그의 일대기가 조명되었으며 포스터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 남로당 제주도당은 제주 4.3 사건의 주체로, 단선·단정 반대와 통일 정부 수립을 목표로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를 일으켰으며, 이로 인해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조직입니다. 이들은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맞서 싸웠고, 이 과정에서 초토화 작전 등으로 제주도의 삶터와 문화가 파괴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제주 박진경 대령 암살 사건
수사과정에서 문상길 중위를 비롯해 강승규 일등중사, 황주복 하사, 김정도 하사, 손선호 하사, 배경용 하사, 양회천 이등상사, 신상우 일등중사 등이 체포되었습니다. 이후 문상길, 신상우, 손선호, 배경용 등 4명은 8월 14일 열린 군법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9월 23일 총살되었습니다. ※
박진경 대령 수상 및 주요 이력
- 1950년 – 을지무공훈장(추서)
- 1946년 – 국방경비대 입대 및 소위 임관
- 1948년 5월 – 제9연대장 취임
- 1948년 5월 – 제11연대장 취임
- 1948년 6월 1일 – 대령 진급
- 1948년 6월 18일 – 암살로 사망
박진경 대령 부인 및 가족
박진경 대령 아내는 진양정공 정임환의 딸 정봉운입니다. 양자로 백형 진용 씨의 아들 박익주를 입양했고 박익주는 육군 준장 예편 후 국회의원을 역임한바 있습니다.
박진경 대령 국가유공자 취소 이유
2025년 국가보훈부는 박진경 대령을 무공수훈자 자격으로 국가유공자로 등록하고 증서를 발급했습니다. 이에 제주 4.3 유족과 시민단체들이 강경 진압 책임자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한 데 반발하며 즉각 취소를 요구했고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제주를 방문해 사과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상훈법 개정을 통해 서훈 취소 절차를 강화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12월 15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검토를 지시했습니다.
※을지무공훈장 국가유공자 혜택
을지무공훈장은 전투 또는 이에 준하는 직무 수행 중 공적이 뚜렷한 군인·군무원 또는 경찰공무원에게 수여되는 무공훈장입니다. 을지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무공수훈자로 분류되어 국가유공자로 등록될 수 있습니다.
본인은 사망했지만 국가유공자로 지정되면 유족과 후손들이 무공수훈자 본인 및 유족·자녀는 초·중·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학자금 지원을 받습니다. 국가보훈대상자 특별전형을 통해 대학 입학 기회가 제공되며, 등록금 면제 등의 혜택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공수훈자 본인(60세 이상)에게는 무공영예수당이 지급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만큼 사실상 손자, 손녀 혜택은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박진경 대령 프로필
- 본명 박진경 / 본관 밀양
- 생년월일 1918년 12월 22일 ~ 1948년 6월 18일
- 출생지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 / 국적 대한민국
- 가족 배우자 정봉운
- 자녀 양자 박익주
- 학력 진주고등보통학교, 오사카외국어대학 영어과, 마쓰도 육군공병 예비사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