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이봉걸 근황 천하장사의 몰랐던 이야기 7 (이봉걸 프로필 부인 수상 영화)

1980년대 씨름이 국민스포츠이던 시절 전설로 군림한 이봉걸 근황 소식입니다. 205의 신장에 체중 138kg의 어마어마한 거구로 이만기, 이준희 등과 함께 씨름의 전설을 모르는 분이 없으시죠. 하지만 최근 지팡이 없이 걷기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씨름 이봉걸 프로필 및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씨름 이봉걸 프로필

  • 李鳳杰 | Lee Bong-geol
  • 생년월일 1957년 2월 28일 (이봉걸 나이 67세)
  • 고향 경상북도 안동시
  • 국적 대한민국
  • 본관 경주 이씨. 아호 산남(山南), 풍량(豊亮)
  • 학력 영신중학교 (졸업), 영신고등학교 (졸업), 충남대학교 문리과대학 (체육교육학 / 학사), 한남대학교 지역개발대학원 (생활체육학 / 석사)
  • 종목 씨름
  • 소속 럭키금성 황소(1984년 ~ 1990년)
  • 이봉걸 키 205cm | 체중 138kg | 혈액형 B형
  • 군대 병역 면제
  • 종교 유교(성리학)
씨름 이봉걸 근황 천하장사의 몰랐던 이야기 7 (이봉걸 프로필 부인 수상 영화)
씨름 이봉걸 프로필

씨름 이봉걸 몰랐던 이야기 7

1980년 이만기 (천하장사 10회), 이준희 (천하장사 3회) 등과 함께 모래판의 빅3로 군림하면서 천하장사 2회, 백두장사 4회 등의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봉걸 씨름선수 입니다. 통산 전적 265전 187승 78패로 승률 70.6%를 기록하고 은퇴한 이후로는 대학 교수 겸 씨름단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 이봉걸 고향 경북 안동 출신입니다.

안동에서 태어나 잠시 경북 영양에서 살다가 대구 영신중학교 재학시절인 1970년에 씨름선수가 되었습니다. 선수 시절 엄청난 키로 화제를 모으면서 인간 기중기라는 닉네임을 얻기도 했습니다. 여담으로 이봉걸 다음으로 키가 큰 선수가 이준희 선수였는데 키가 188cm로 무려 17cm 차이가 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키가 170이 넘었을 정도로 어마어마했고 1969년 대구 영신중학교 입학하면서 유도를 했지만 대학교 선수들의 횡포로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년간 빵집에서 제과 제빵 기술을 배우며 방황하다가 뒤늦게 영신중학교 3학년으로 편입해 씨름을 다시 배웠다고 합니다.

2. 이봉걸 농구 선수였다?

큰 키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프로 데뷔전에는 신장을 활용하지 못해서 사실 명승부 제조기 였습니다. 그래서 큰 키를 탐낸 방열 감독 밑에서 농구선수를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의 특별 지시로 농구단을 창단하면 현대중공업 씨름단에 있던 이봉걸 선수를 스카웃했습니다.

하지만 큰 활약이 없었고 이내 씨름으로 복귀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 9연속 우승을 노리던 김성률 장사를 잡은 씨름 유망주가 농구를 하게 된 것은 돈 때문이었습니다. 7가족의 생계를 떠맡고 있던 이봉걸은 농구전향을 대가로 2000만원을 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당시 계약서도 없이 구두계약으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모래판이 아닌 농구코드에 선 1980년 농구는 겨울스포츠로 확실히 자리잡으며 고려대 이충희, 연세대 김현준 등으로 인기를 끌었고 매우 공격적인 영입을 진행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봉걸이었습니다. 게다가 김성률을 잊는 차세대 장사였던 이봉걸의 영입은 단연 화재였습니다.

하지만 마이클 조던의 야구 외도처럼 이봉걸의 전향 역시 8개월간의 훈련 후 1980년 7월 현대 농구단을 탈퇴 하고 이듬해인 81년 대학입학예비고사에 합격한 뒤 충남대 씨름부에 스카우트되어 다시 모래판에 돌아갔습니다. 언론은 이봉걸이 고된 농구 훈련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났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600만원 밖에 받지 못했고 충남대 씨름부에 들어갔지만 사실상 해체된 팀이라 라면도 제대로 먹지 못해서 힘을 쓰지 못한 아픔이 있습니다. 천하장사가 된 이후에도 고기 보다 익숙한 시래깃국과 라면을 찾았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합니다. 여담으로 1986년 천하장사 상금은 1800만원이었습니다.

*정주영 히스토리 (30) 이봉걸을 농구선수로 만들라

씨름 이봉걸 이만기 이준희
씨름 이봉걸 이만기 이준희

3. 이봉걸 이만기 킬러였다?

*이봉걸 이만기 상대전적 : 통산 10승 19패

씨름의 황제 이만기 선수를 천하장사 대회에서 2승 1패로 앞섰지만 사실 통산 전적은 1번 이기고 2번 지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1985년 대학교를 졸업하고 럭키금성 선수단에 들어가면서 인간기중기로 각성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는 막상막하의 성적이었습니다.

소속팀 이중근 감독은 체급이 높은 이봉걸에게 라이벌 이만기가 순발력을 기르기 위해 구보와 배드민턴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 하루 1시간의 테니스를 훈련을 통해 무게중심이동에 대한 감각과 순발력을 높여 나갔고 꾸준한 훈련 결과는 성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1986~1987년의 짧은 전성기 동안은 거의 천하무적급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당시 인기가 어마어마 했는데 이만기와의 천하장사 결승전 시청률은 68%를 기록할 정도로 역대급 라이벌이었습니다. 여담으로 이만기를 잡고 천하장사가 된 강호동 선수가 현역시절 4전 전패를 한 선수가 이봉걸 선수입니다. 참고로 이봉걸 선수가 프로 데뷔하면서 받은 계약금은 천만원 월급은 백만원이었습니다.

(선수 시절 큰 체격에도 불구하고 굶어가면서 운동을 한 아픔이 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히길 김성률, 홍현욱, 최상혁, 강호동 같은 통통한 선수들은 상대하기가 편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호리호리한 체형의 문희경, 강하문, 김종렬 등의 선수들이 더 어려웠는데 체격차이가 너무 나서 제대로 잡히질 않았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명승부 제조기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4. 이봉걸 작품활동 영화배우였다?

*이봉결 영화 우뢰매7, 두 형사 등

1992년 씨름판을 떠난 이후 잠시 영화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는데요. 돌아온 우뢰매에서 생각보다 꽤 비중있는 조연으로 출연했습니다. 여담으로 이준희 선수도 영화 ‘폐촌’ 등에 출연한 바 있습니다. 여담으로 이만기, 이준희 선수는 여성팬들에게 인기가 상당히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적었어도 나름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5. 정치인 이봉걸?

*이봉걸 선거이력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 서구 제2선거구 시의원 열린우리당 낙선

2006년 열린 우리당 소속으로 잠시 정치를 하기도 했었는데요.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전시 시의원으로 출마를 하기도 했습니다.

6. 이봉걸 부인 결혼 스토리

*가족 부인 (와이프), 자녀 아들 2명, 딸 2명 등

이봉걸 아내 분과는 충남대 재학시절인 1983년 가을에 친구들과 당구를 친 후 족발집에 갔다가 당시 간호사였던 와이프를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이봉걸 와이프 분은 근처 산부인과에서 일하는 간호사인데 식당 아주머니에게 졸라서 연애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의 연애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결혼을 위해서 처갓집을 찾았지만 장모님이 사위가 무섭다며 부엌문을 잠그고 숨어버리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장인 어른은 단숨에 결혼을 허락했고 결국 장모님마저 승락하면서 1985년 3월 결혼식을 올리고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아들도 모두 180이상의 큰 키를 자랑하고 딸도 170이상의 장신이라고 합니다.

7. 이봉걸 수상 이력

  • 1978년 회장기쟁탈 전국씨름대회 우승
  • 1978년 대통령기 대회 우승
  • 1986년 천하장사대회 우승
  • 1987년 천하장사대회 우승

씨름판의 신사 이준희, 씨름 황제 이만기 선수에 비해서 주로 조연으로 씨름팬들이 더 많이 기억하는데요. 그 이유는 프로에 정식으로 데뷔한 1986년까지는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운동을 한 게 컸다고 합니다. 프로에 데뷔하면서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1986~87년은 사실상 천하무적이었지만 이미 서른 살이었던 터라 이내 부상 등으로 하락하고 말았습니다.

씨름 이봉걸 근황 건강 상태는

*다시 모인 ‘모래판 3李’…지팡이 짚는 이봉걸 충격적 모습

씨름을 그만두고 나서 대덕대학 겸임교수, 충청대학 겸임교수, 경남대학교 겸임교수 등 교직에 잠시 몸을 담았기도 했습니다. 2009년 에너라이프 타이거즈 씨름단 창단 이후에는 감독으로서 후배 선수들을 이끌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현역시절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탓에 부상이 잦았는데요. 특히 허리가 좋지 않아서 지금은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조차 힘든 상황이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나이가 들면서 이봉걸 건강 상태는 점점 더 나빠져서 최근에는 먼 거리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움직여야 할 만큼 맘이 나빠졌다고 합니다.

이미 허리가 좋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는데 2014년에는 제자인 미국 씨름 거인 커티스 존슨 선수가 치료비를 대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스포츠에 만약은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만약 이봉걸 선수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처럼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고 관리 받았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씨름황제는 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뒤늦게나마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가수 이택림 근황 소식도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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