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최고의 조선시대 기생 초요갱 이야기입니다. 조선시대 기생 하면 논개, 춘향, 어우동, 황진이, 초요갱, 이옥란, 윤채선, 오산월, 장연홍 등이 꼽히는데요. 그 중 최고는 역시 세종대왕 왕자 3명과 연애를 했던 전설의 기생입니다. 초요갱 초상화 잠시 후에 보겠습니다.
초요갱 뜻은 중국 초나라 영왕이 사랑했던 여자가 허리가 가늘고 아름답다하여 허리가 가늘고 아름다운 여인을 초요라 불렀는데 거기에 미인을 뜻하는 갱 (妔) 자를 써서 초요갱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종의 7번째 아들 평원대군이 지어줬다고 합니다.
어우동, 황진이, 춘향이 등도 유명하지만 왕자들과 사랑을 나눈 초요갱은 조선왕조실록에 16번이나 언급되었으니 조선 기생 중 최고는 초요갱 아닌가 싶네요.
목차
초요갱 초상화 얼굴 공개!
대체 초요갱 얼굴이 어느 정도길래 왕자 3명과 연애를 했을까요? 세종실록에 올라와있기를 옥부향, 자동선, 양대랑 등과 함께 조선시대 최고 기생이라고 기록되어있을 정도입니다. 아쉽게도 초요갱 초상화는 후세에 추정해서 그렸다고 합니다.
기생 초요갱은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춤도 뛰어났으며 한국 역사상 3대 악성이라 불리는 박연 제자였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특급 외모에 톱스타 급 재능도 가지고 있었으니 가히 조선 최고의 기생이 아닌가 싶네요.
실제 조선왕조 실록에 실린 초요갱의 이야기는 이유 (금성대군)와 이영(화의군) 등이 간통했다는 사실이 적혀있을 뿐입니다. 초요갱 초상화는 있었지만 나중에 왕실에서 이를 은폐하기 위해서 없앴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기생입니다.
기생 초요갱 평원대군 러브 스토리
천일야사, 벌거벗은 한국사, 전설의 배우들 등 방송에서도 다뤘을 정도로 유명한 기생 초요갱인데요. 박연의 제자로 박연으로부터 악무를 전수받았다고 합니다. 세종대왕 시대에 만든 악무를 익힌 터라 수많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초요갱은 원래 양민으로 양반의 첩이었는데 집안이 역모에 휩쓸리면서 남편이 죽고 기생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생이 되어서 기방에 있을때 만난 것이 바로 초요갱의 첫번째 정인이 바로 평원대군이라고 합니다.
평원대군 이임은 세종의 7번째 아들로 학문에도 뛰어나고 활쏘기, 승마 등에도 뛰어나며 성품까지도 착실한 지금으로 따지면 엄친아가 성격까지 좋았다고 합니다. 평원대군이 처음 초요갱을 만나 것은 기방이었다고 하는데요.
평원대군은 친구들과 기방에서 만나기로 했다가 조금 늦게 갔는데 초요갱이 춤추는 것을 보고 첫 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나라 최고의 미녀를 뜻하는 초요에 갱을 붙여서 초요갱이라는 이름까지 지어줬다고 합니다.
(조선을 넘어 중국에까지 퍼질 만한 미모라는 의미입니다.)
초요갱에게 반한 평원대군 이임은 아버지 세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첩으로 들였다고 합니다. 이대로만 갔으면 평원대군의 여자로 무난한 일생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1445년 3월 3일 향년 19세 나이로 평원대군이 천연두로 사망하면서 다시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됩니다.
초요갱 화의군
초요갱은 지아비인 평원대군의 상중에 화의군 이영과 사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초요갱은 곤장 80대의 형벌과 함께 쫓겨날 뻔 했지만 박연의 제자로 세종대왕의 악무를 익힌 유일한 계승자로 인간문화재 급이라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초요갱 신자형
화의군 이영은 이복 형의 여자인 초요갱과 간통한 죄로 유배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에 다시 만난 것이 바로 신자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자형은 초요갱에게 푹 빠진 나머지 정처도 소박하고 집안의 노비 2명을 때려죽였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4번째 남자인 신자형도 한양 밖으로 유배를 당했다고 합니다. 재밌는건 쫓겨나야 마땅한 초요갱이지만 인간문화재 급의 재능을 갖고 있어서 세조가 아예 궁궐로 불러 들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계양군이 초요갱에게 또 반해버렸다고 합니다.
초요갱 계양군
계양군은 세조에게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내 초요갱을 만나러갔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변대해’라는 인물이 계양군이 부재중일 때 초요갱의 집을 찾았다가 계양군에게 걸렸다고 합니다. 결국 이 때문에 변대해는 계양군의 종에게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스캔들은 조선왕조 실록에도 실려있습니다.
‘계양군(이증)이 울부짖으며 머리를 조아리고 하늘을 향해 무고함을 맹세까지 하였지만 계양군은 그날도 초요갱의 집에서 묵었다’ – 조선왕조실록 세조 9년 윤7월 4일
결국 이렇게 조선시대 왕가의 최대의 스캔들의 주인공이 바로 계양군이 됩니다. 계양군은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고 세조가 즉위하는데 공을 세워서 잘나가는 인물이었지만 결국 주색에 빠져서 1464년 9월 26일에 향년 38세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결국 다시 천민으로 떨어졌고 이후 행보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초요갱 최후 이야기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여담으로 여기에 또 하나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그것이 바로 재상을 비롯해서 대신 40명과 간통을 했다는 어우동이 뒤를 이어서 바로 등장합니다.
계양군의 4남 중 한 명인 서장남 방산수가 6촌 형제인 태강수 이동의 와이프 어우동과 간통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집안 내력이라고 봐야 할 정도 아닌가 싶네요. 참고로 초요갱 못지않게 어우동의 남성편력도 화려한데요.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수산수, 방산수, 태강수 등의 왕족을 시작으로 수십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여기가 끝이 아닌데 어우동이 간통을 할 때 여종도 함께 간통을 했다고 합니다. 결국 어우동은 여종과 함께 교수형을 당하면서 끝이 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비하인드가 하나 더 있는데 어우동 어머니 정귀덕 씨 또한 남편 박윤창 씨를 두고 간통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결국 정귀덕은 어우동의 오빠 박성근에게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걸 어우동 딸 번좌가 고발해서 알려졌다고 합니다.
흠 이 정도면 막장 드라마의 원조는 따로 있는 것 아닌가 싶네요. 재미로 보는 조선시대 기생과 불륜스캔들 이야기였습니다. 이영애 정호영 결혼 스토리도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