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영부인들이 사랑한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이광희 입니다.
코리안 하이패션으로 유명한 이광희 디자이너는 남다른 집안에서 자랐는데 한국의 그룬트비라 불리는 이준묵 목사와 간호사 1세대로 희망의 망고나무 대표 김수덕 여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이준묵 목사는 1948년 해남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고 고아들을 위해 1953년 해남등대원을 세우는 등 전후 대한민국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요.
어머니 김수덕 여사는 양로원인 평화의집과 어린이집인 천진원을 세워서 복지사업을 하며 한센인들의 도우미로 사신 분입니다.
나환자들을 돌보며 등대원 고아들을 돌보느라 바쁜 엄마와 초등학교 6학년 때 광주로 전학가느라 떨어져 지내면서 크게 되는데요.
이화여대 비서학과를 나온 이후 고민 끝에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국제복장학원을 다니고 1979년 하얏트호텔 지하에 의상실을 열면서 디자이너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1984년 사랑과 진실 드라마에서 배우 원미경이 입은 옷이 화제가 되면서 주목받게 되고 1986년 이광희 룩스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앙드레 김과 함께 대한민국 1세대 대표 디자이너가 됩니다.
이후 대기업 오너 부인들은 물론 퍼스트레이디까지 찾는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자신의 패션 감각이 어머니 김수덕 여사가 등대원 아이들에게 손수 옷을 만들어주는데서 왔다고 합니다.
지금은 탤런트 김혜자 씨를 따라서 2009년부터 남수단 톤즈에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이광희 디자이너 인생 스토리입니다.

목차
영부인들이 사랑한 이광희 디자이너
195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이준묵 목사는 한국기독장로회 총회장과 한신대학교 초대 이사장을 지낸 인사로, 해남 등대원을 설립해 고아와 한센인들을 돌보는 봉사 생활을 펼쳤습니다. 어머니 김수덕 여사는 등대원에서 요리사와 청소부 역할을 맡아 약자들을 헌신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 비서학과를 졸업 후 국제복장학원에서 패션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1978년 10월 ‘Viscountess 부티크’를 설립하며 패션계에 첫발을 내디뎠고, 1979년 하얏트호텔 지하에 의상실을 오픈합니다. 여성적인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고 부티크 오픈 10개월 만에 재벌가와 상류층 여성들의 주문을 받아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1980년대 선 자리, 상견례, 약혼식, 결혼식에서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를 선도하며, 앙드레 김 디자이너와 함께 한국 하이엔드 패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역대 영부인들의 퍼스트레이디 룩을 담당했는데 김옥숙 여사부터 이순자 여사, 유순미 여사, 김윤옥 여사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부인들의 드레스를 디자인한 주인공입니다.

이광희 영부인 로비 사건
1997년 IMF 외환위기 직전, 영부인 드레스 제작과 관련된 ‘옷 로비 사건’ 루머에 휘말려 고통을 겪습니다. 정치권에 옷을 공짜로 제공했다는 루머로 실제로는 모든 비용을 청구한 정당한 거래였지만 이 사건으로 10년 이상 억울함을 안고 살기도 했습니다.
2009년 탤런트 김혜자 씨를 따라 남편 홍성태와 함께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마을을 방문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톤즈에서 빈곤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목격한 그녀는 패션 사업 일부 수익을 기부하며 지원을 시작합니다. 2012년 톤즈에 ‘희망고 빌리지’를 설립해 학교와 의료 시설을 건립합니다.
망고나무를 심는 이유는 한 번 심으면 100년 정도 수확할 수 있어서 망고나무 심기 캠페인을 통해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기에 나섰습니다. 2014년부터는 부부가 직접 톤즈에 거주하며 톤즈에서 패션 워크숍을 열어 현지 여성들에게 직업 교육을에도 나섰습니다.
(※망고는 톤즈 현지인들의 유일한 먹거리로 나무 하나가 그 곳에선 생명이라고 합니다.)

이광희 디자이너 수상 및 주요 이력
- 2000 제7회 삼우당 섬유진흥대상 디자인개발부문상
- 2000 제2회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부문 산업포장
- 1999 신지식인상
- 1999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3월의 중소기업인
- 1994 아시아 패션진흥협회 제정 올해의 아시아 디자이너
1986년 서울국제패션위크(SIFF)에서 첫 패션쇼를 열어 아프리카 소재를 활용한 컬렉션을 선보였고 1994년 아시아 패션진흥협회로부터 올해의 아시아 디자이너로 선정되며 국제적 인정을 받습니다. 2000년에는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과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파라디아 명품관에 진출하며 국내 명품 브랜드의 위상을 높입니다.
같은 해 제7회 삼우당 섬유진흥대상 디자인개발부문상과 제2회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부문 산업포장을 받습니다. 2001년 3월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를 맡아 후학 양성에도 나섰습니다. 2000년대 중반 패션계 정점에 올랐으나, 부모님의 영향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해 아버지의 별세 후 해남 등대원은 오빠가 대표를 맡고 남수단 톤즈에서 도네이션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희망고 프로젝트로 남수단 톤즈에 망고나무를 4만 그루 넘게 심었고 어른들과 아이들을 위한 학교와 탁아소, 망고 묘목장, 우물, 화장실 들이 있는 희망고빌리지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희망고 빌리지에 여성직업학교를 개교하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여는 등 봉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광희 디자이너 남편 홍성태 교수
이광희 디자이너의 가족은 봉사와 나눔의 가치를 중시합니다. 아버지 이준묵 목사는 해남 등대원을 설립해 고아와 한센인들을 돌봤습니다. 어머니 김수덕 여사는 등대원에서 다방면으로 헌신했습니다. 오빠 이성용은 현재 해남등대원을 맡고 있는데요.
배우자인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1955년생으로 아내 디자이너 이광희보다 3살 연하 입니다. 패션과 관련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가 이후 결혼까지 하고 자녀들을 낳고 살고 있는데요. 남수단 톤즈의 희망고 빌리지 사업 이름을 지어주는등 봉사활동에도 물심양면으로 부인을 돕고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세운 건 톤즈 사람들이었습니다. 벽돌을 날라 쌓고 정성껏 페인트칠하는 그들을 보며 오히려 내가 힘을 얻었지요. ‘희망고 빌리지’ 재봉학교 졸업생들은 옷을 만들어 줬습니다.” – 인터뷰 중에서
이광희 디자이너 프로필
- 영어이름 – | 본명 이광희
- 생년월일 1952년 | 나이 73세
- 고향 전라남도 해남 | 국적 대한민국
- 집 : 서울 남산 이광희 부티크 인근
- 키 – | 몸무게 – | 혈액형 – | MBTI – | 종교 –
-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비서학 학사
- 가족 남편 홍성태 교수, 자녀 아들 등
- 소속사 리패션시스템
- 개인 SNS 희망고 홈페이지


